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불길한 예감

기사승인 2019.09.19  09:34:56

공유
default_news_ad2

- 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도서관장

▲ 조성국 법학박사, 경민대학교 (前)교수⋅도서관장 © 동부교차로저널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갑자기 사건 ․ 사고를 당해 큰 화(禍)를 입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사건 ․ 사고의 경우 외에는 개인이나 단체 또는 기관 등에서 어떤 사업을 추진하려면, 미리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실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사업 추진자들이 그 결과에 대해 성공이냐 실패냐에 대한 느낌 즉, 길(吉) 또는 불길(不吉)한 예감(豫感)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추진자가 개인일 때, 결과에 대해 不吉한 예감이 들면 접으면 된다.

그러나 공적(公的)인 사업이고, 추진 주체(主體)가 공인(公人), 군인, 공공단체 또는 국가기관이라면 不吉한 豫感이 든다고 사업을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筆者-조성국, 예비역 해병대위)가 월남전에 참전, 소총소대장(小銃小隊長)을 하였다. 소대 단독작전(小隊單獨作戰)을 나가면서 필자의 예감이 좋지 않다고 작전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소대 단독작전 중 적군(敵軍)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소대원이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적군이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향해 계속 사격할 경우, 소대 돌격명령(突擊命令)을 내리면서, 필자가 “나를 따르라-!”고 소리치면서 제일 앞으로 뛰어 나갔다.

물론 필자가 전사(戰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 사격을 받으면 그냥 있는 것 보다는 총반격(總反擊)하는 편이 희생자가 덜 생길 수도 있다. 소대 전체가 일시에 돌격하면(속된 표현으로 한꺼번에 벌 떼 처럼 덤비면) 적군은 도망가거나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다.

소대장은 최일선[最一線] 중에서도 최일선에 나서서 지휘하므로, 적군이 소대장을 즉시 알아보고 소대장에게 집중 사격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전투이든지 소대장의 희생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먼 거리에서 다수의 적군이 우리에게 사격을 많이 해올 경우는 돌격하면 안 된다.

이때는 화력지원(火力支援)을 요청, 공격해야 한다.

① 포병에게 105밀리 곡사포(曲射砲)를 요청, 포격(砲擊)을 하거나,

② 또는 앵글리코[항공 함포 연락중대(航空艦砲連絡中隊), ANGLICO : Air-Naval Gunfire Liaison Company)]에 항공기를 요청한다. 그러면 정찰기(偵察機, L-19)가 온다.

소대장(필자)이 정찰기에게 아군(我軍)과 적군 위치의 지도상 좌표(地圖上 座標)를 알려준다. 정찰기는 즉시 ‘F-4 팬텀(Phantom) 전투폭격기’를 부른다.

偵察機는 적군 정황을 살핀 후, 목표지점에 로켓포(백색 연막탄)를 발사하면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면 그곳에 팬텀기가 폭격을 한다.

폭격은 고폭탄(高爆彈, High Explosives)을 투하(投下)하기도 하고, 네이팜탄(Napalm 彈)을 투하하기도 하여, 목표 지점 일대를 삽시간에 그야말로 쑥대밭을 만들어 버린다.

쑥대밭을 만드는 장면을 보지 못했거나, 이 글을 처음 읽는 분들은 의아해 하실 것이다.

네이팜탄(Napalm 彈)은 알루미늄 비누와 휘발유를 혼합, 고농도 연료로 만든 유지 소이탄(油脂燒夷彈)인데 터지면 섭씨 3,000도의 고온(高溫)을 내며 목표물 일대를 불바다(지름 30 미터)를 만든다. 그 자리에 있던 풀과 작은 나무는 삽시간에 하얀 재(災)로 변한다.

보통 화재 발생 시 물품이 타면 남는 재는 검은 색이지만, 고열(高熱-섭씨 3,000도)에서 타면 재가 하얀 색이 된다.

이렇게 하면[그들(적군)의 입장에서 당하면], 적군이 아군에게 쉽게 달려들지 못 한다.

1967년 2월 15일 적군 중에 최강부대여서 그들이 강철연대(鋼鐵聯隊)라고 부르는 제1연대(월맹 정규군)가 한국해병대 제11중대 짜빈동[차평동(茶平洞)] 진지를 공격했다가 큰 피해를 당하고는, 적군 고위층에서 적군(월맹군과 베트콩)에게 “한국 해병대를 만나면 싸우지 말고 잘 피하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필자는 1967년 2월 16일부터 짜빈동 진지 일대에서 6개월 간 전투를 하였다. 물론 사선(死線)을 여러 번 넘었다. 필자는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상이군경(국가유공자)이다.

위와 같이 전투를 하고 귀국, 해병 제1상륙사단(포항)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로 와서,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옆에서. 애국가를 ….

사실 ‘不吉한 豫感’에 관한 글은 필자의 군동기생[해병(사관)학교 제34기] 이종순 해병중위에 관해 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쓴 것인데 앞부분이 좀 길었다.

李 中尉[병과(兵科) 항공]는 해병 제1상륙사단 항공대(航空隊)에서 偵察機(L-19)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월남 파병명령을 받았다. 파월(派越) 명령을 받으면 월남전 특수교육대(포항)에 입교하여 일정기간 교육을 받은 후 파월되는 것이다.

그런데 李 중위가 전투에 대한 不吉한 예감이 들었는지 특수교육대 입교 명령을 받고도 입교하지 않았다. 군령(軍令)에 따르지 않으면 헌병대에서 모시러(잡으러) 헌병들이 출동한다. 사실 군부대에서 장교가 군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이 소문이 퍼지자 헌병대 보다도 먼저 필자의 군동기회(軍同期會)에서 난리가 났다. 동기생들이 李 중위를 불러다 엄중하게 경고, 李 중위는 특수교육대에 입교, 특수교육 받은 후 파월되었다. 그는 해병대 주월(駐越) 청룡부대(靑龍部隊) 항공대에서 偵察機 조종사로 적군 상황을 정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 偵察機는 조종사 외 1명(2인 승)이 타는데 중량도 가볍다. 원래 정찰용으로 비무장(非武裝)인데 월남전에서는 경기관총과 로켓포(Rocket 60㎜)를 장착하였다.

• 필자가 어렸을 때(6.25사변) 이 정찰기를 보면 비행기의 형태가 우리 시골(경기도 광주군 서부면-현 하남시)에서 사용하는 거물게[‘고무래’의 경기도 광주군 지역 방언(方言)] 같이 생겨서, ‘거물게 비행기’ 라고 불렀다.

1969. 7. 13. 이종순 중위가 월남 추라이(珠萊 주래) 지역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는데 지상에서 베트콩(적군)이 소총으로 이 중위의 정찰기를 쐈다.

이 중위가 반격하기 위해 지상에 베트콩을 향해 비행기를 내리 숙이면서 기관총을 사격 했는데 지상의 베트콩도 이 중위를 향해 소총을 사격, 실탄이 이 중위의 이마에 맞았고, 비행기는 그대로 지상에 추락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소총으로 비행기를 맞추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1969. 7. 필자는 국립 서울현충원(서울 동작구 동작동) 李 중위의 안장식(安葬式)에 참석하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딸은 묘 앞에 놓은 제수(祭需-사과, 배)를 달라고 울고, 파놓은 광중(壙中) 안으로 유골함(遺骨函)을 넣자, 李 중위의 어머님이 “이제는 정말 죽었구나!” 라고 하시면서 대성통곡을 하실 때, 필자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묘  비 : 국립 서울현충원 제51묘역(墓域).  해병대위[1계급 추서(追敍)] 이 종 순 의 묘 / 묘비번호-174.  전사일-1969. 7. 13.

교차로저널 webmaster@n363.ndsoftnews.com

<저작권자 © 교차로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